송재호 6주기 추모|나이·프로필·학력·고향·사망 원인·대표작·유작 총정리
2026년 11월 7일은 배우 故 송재호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되는 날입니다. 송재호는 1937년 평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고,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활동을 시작한 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세기 넘게 연기했습니다. 2020년 11월 7일 오랜 지병으로 투병하다 향년 83세로 별세했습니다.
오늘 그의 이름을 다시 검색하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별세 당시 나이와 사망 원인, 출신 지역과 학력, 그리고 국민 아버지로 불리게 된 대표작일 것입니다. 특히 《영자의 전성시대》의 청년 송재호와 《부모님 전상서》의 아버지 송재호는 서로 다른 시기의 같은 배우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번 글에서는 생애의 시간순 흐름을 따라 배우 송재호의 프로필을 살펴보고, 《살인의 추억》과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에서 남긴 장면, 말년의 영화 활동, 사격 심판 경력, 사후 수상 기록까지 정리합니다. 6주기 추모 소식은 새로운 사망 사건이 아니라 2020년 별세를 기억하는 기일 소식입니다.

- 6주기: 2026년 11월 7일
- 출생·고향: 1937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 별세: 2020년 11월 7일, 향년 83세
- 학력: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데뷔: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 1964년 영화 《학사주점》
- 대표작: 《영자의 전성시대》·《부모님 전상서》·《살인의 추억》·《그대를 사랑합니다》
- 사망 원인 관련 보도: 장기간 지병 투병에 따른 숙환
- 사후 수상: 2020년 KBS 연기대상 특별공로상, 2021년 보관문화훈장 추서
1. 2026년 11월 7일, 故 송재호 6주기를 맞아

2020년 11월 7일, 송재호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여섯 해가 지난 2026년 11월 7일이 6주기입니다. 언론에서 다시 고인의 사진과 출연작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함께한 배우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배우의 기일과 사후 공로상 수상일은 다릅니다. 2020년 11월은 별세와 장례, 같은 해 12월에는 KBS 연기대상 특별공로상, 2021년 10월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의 보관문화훈장 추서가 이어졌습니다. 기사마다 다른 연도가 나오는 것은 사건이 다른 까닭이지 날짜가 잘못 알려진 것은 아닙니다.

6주기를 맞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현은 ‘국민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기 인생 전체를 이 별명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영화의 중심에서 사회의 변화와 청춘의 불안을 연기했고, 중년에는 평범한 가족의 고민을, 노년에는 오래 살아온 사람의 사랑과 상실을 표현했습니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작품을 다시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부모 세대의 얼굴로 보였던 연기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우리 자신의 삶과 닿아 보이기도 합니다. 6주기 추모가 단순한 회고를 넘어서는 이유입니다.

2. 송재호 프로필 총정리: 본명·직업·활동 기간

송재호는 한국의 영화배우이자 TV 탤런트, 성우입니다. 대중에게는 본명보다 예명인 송재호로 널리 알려졌으며, 본명은 송재언으로 소개됩니다. 평양에서 태어나 피란 시절 부산과 인연을 맺었고, 부산 지역 방송국에서 처음 직업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항목 | 송재호 프로필 |
|---|---|
| 활동명 | 송재호 |
| 본명 | 송재언 |
| 직업 | 배우·성우 |
| 출생 | 1937년 3월 10일로 알려짐 |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 |
| 학력 |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 방송계 데뷔 |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 |
| 영화 데뷔 | 1964년 《학사주점》 |
| 별세 | 2020년 11월 7일, 향년 83세 |
젊은 날의 출연작과 2000년대 이후의 드라마를 함께 보면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이미지가 달라집니다. 청년 주인공을 맡을 때의 선명한 눈빛과 아버지 역할을 맡을 때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수사반장을 연기할 때의 거친 호흡이 서로 다른 역할을 만들어냈습니다.

‘송재호’라는 이름은 동명이인이 있는 이름입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인물은 《부모님 전상서》·《영자의 전성시대》 등에 출연했고 2020년 별세한 원로 배우입니다. 정치인이나 가수 등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의 프로필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송재호 나이와 생년월일, 향년 83세의 의미

송재호의 별세 당시 나이는 향년 83세입니다. 1937년생으로 2020년 11월 7일 별세했다는 사실은 당시 보도와 2026년 6주기 기사에서도 일치합니다. 생년월일은 인물 소개 자료에 1937년 3월 10일로 표기돼 있으며, 신문 보도에서는 주로 출생 연도인 1937년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요즘처럼 ‘만 나이’를 기준으로 검색하면 1937년 3월생은 2020년 11월에 만 83세가 됩니다. 그래서 ‘향년 83세’와 출생·별세 연도가 서로 맞아떨어집니다. 2026년에 살아 계셨다면 몇 살이었는지를 계산하는 글도 있지만, 추모 기사에서는 보통 별세 당시의 나이를 제시하는 것이 정확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인터넷의 오래된 인물정보에는 송재호의 태어난 해가 서로 다르게 적힌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검색창에 ‘송재호 실제 나이’라는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기사에 근거해 기본 정보를 정리할 때에는 일관되게 확인되는 1937년생·2020년 별세·향년 83세를 기준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나이에 관한 정보는 배우의 연기 시기를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1975년 《영자의 전성시대》 당시 송재호는 30대 후반이었고, 2004년 《부모님 전상서》가 방송될 때에는 60대 후반이었습니다. 시대마다 맡은 배역의 인상이 달라진 배경에는 그의 실제 삶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4. 송재호 고향은 평양, 부산에서 성장한 사연

송재호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양입니다.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 태어났으며, 한국전쟁 시기 1·4후퇴를 겪으며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평양 출생과 부산 성장 경험이 함께 소개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송재호가 부산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는 태어난 곳과 성장한 곳을 나누어 답해야 합니다. 출생지는 평양이고, 부산은 피란 이후 중요한 학창 시절과 방송 활동의 토대가 된 곳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지역과 인연을 맺을 수 있지만, 고향을 설명할 때는 출생지와 생활지를 섞어 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훗날 연기에도 자산이 됐습니다. 중후한 표준어 말투만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살인의 추억》에서 들려준 거친 지역 말투가 낯설 수 있습니다. 그는 지역의 말과 생활감, 사람들의 정서를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옮기곤 했습니다.
피란 경험은 단순한 프로필 한 줄 이상의 시대적 배경을 지닙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한국 방송과 영화의 역사 한가운데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고인의 연기가 왜 다양한 세대의 삶을 실감 나게 담아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5. 송재호 학력: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송재호의 학력은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으로 소개됩니다. 평양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피란해 성장한 뒤 동아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방송 활동의 출발점 역시 부산이었으므로 그의 학창 시절과 직업 초기 이력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문학 전공이라는 사실을 알면 성우 데뷔 경력을 더 흥미롭게 보게 됩니다. 문자로 쓰인 문장과 실제 입으로 전달되는 대사는 전혀 다른 감각을 요구합니다. 그는 성우 생활에서 목소리만으로 상황을 전달해야 했고, 이후 배우가 되면서 그 표현을 눈빛과 움직임으로 확장했습니다.

다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연기술이 전적으로 학력 덕분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전공했는지와 오랜 연기를 통해 쌓은 현장 경험은 각각의 이력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검색 결과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 이름이 함께 나오기도 하지만 신뢰할 만한 공개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은 세부 학교 정보는 임의로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학력에 관한 핵심은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입니다.
6. 1959년 성우 데뷔와 1964년 배우 전향

송재호의 방송계 첫 출발은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 활동이었습니다. 처음부터 TV 드라마의 아버지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녹음실에서 말의 속도와 감정, 침묵과 호흡을 익힌 인물이었습니다. 성우로 일하다 카메라 앞에서 직접 연기하고 싶다는 뜻으로 영화계에 도전했습니다.
1964년 영화 《학사주점》으로 스크린에 데뷔했고, 1968년에는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됐습니다. 성우·영화·TV라는 세 영역을 오가며 기반을 다진 뒤, 수십 년 동안 작품마다 다른 배역을 맡는 중견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 시기 | 연기 경력의 흐름 |
|---|---|
| 1959년 |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데뷔 |
| 1964년 | 영화 《학사주점》으로 배우 활동 시작 |
| 1968년 | KBS 특채 탤런트 선발 |
| 1975년 | 《영자의 전성시대》로 청년 배우 이미지 각인 |
| 1980~2000년대 | 영화 주연·조연과 TV 가족극·사극 활동 병행 |
| 2010년대 | 영화와 드라마에서 노년의 인물까지 폭넓게 연기 |

특히 오늘날에는 TV와 영화를 오가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송재호가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방송 매체의 성장 과정 자체가 한국 연예사의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그의 경력에는 라디오 시대의 성우, 충무로 영화, 안방극장 드라마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는 기록을 볼 때에도 모든 작품이 주연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시청자가 그 인물을 믿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조연의 역할도 송재호가 남긴 중요한 성취였습니다.


7. 영자의 전성시대부터 꼬방동네 사람들까지

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송재호의 젊은 시절을 가장 선명하게 만날 수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창수 역을 맡아 급격히 변화하는 도시와 생활의 무게 속에서 사랑과 현실 사이에 놓인 청년을 연기했습니다. 훗날의 부드러운 아버지 이미지와 확연히 다른 얼굴입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한국 사회의 도시화와 노동 현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여서, 주인공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시대를 함께 보게 합니다. 6주기에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것은 배우의 젊은 얼굴뿐 아니라 1970년대 한국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도 돌아보는 일이 됩니다.
| 대표 영화 | 시기 | 기억할 점 |
|---|---|---|
| 영자의 전성시대 | 1975년 | 창수 역, 청년 주인공 |
|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 1981년 | 도시 남성을 그린 주연 |
| 꼬방동네 사람들 | 1982년 | 사회적 현실을 담은 작품 |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1980년대 | 문학과 영화가 만나는 시기의 출연작 |

1981년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에서는 삶의 허영과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교차하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다음 시기의 《꼬방동네 사람들》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바라보는 이야기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작품은 웃음으로, 어떤 작품은 현실의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이 시기 작품들을 먼저 살펴보면 송재호를 처음부터 인자한 노년 배우로만 기억하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청춘을 연기했고, 사랑과 생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맡았으며, 시대와 함께 나이 들어간 배우였습니다.
8. 국민 아버지를 만든 가족 드라마 대표작

고인이 ‘국민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널리 불리게 된 배경에는 TV 가족 드라마가 있습니다. 《보통사람들》, 《사랑이 꽃피는 나무》, 《장미와 콩나물》 등에 출연하며 안방극장의 익숙한 얼굴로 자리 잡았습니다. 방송이 가족 공동의 일상에 가깝던 시절, 시청자들은 그의 말투와 눈빛에서 친근한 어른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2004~2005년 방송된 《부모님 전상서》에서 안재효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큰 갈등을 해결하는 영웅보다는 가족을 아끼고 때로는 마음을 서툴게 표현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공감을 얻었습니다.
| 드라마 | 송재호의 출연 이력 |
|---|---|
| 사랑이 꽃피는 나무 | 1980년대 청춘·가족 드라마 |
| 장미와 콩나물 | 1990년대 후반 가족극 |
| 부모님 전상서 | 2004~2005년, 안재효 역 |
| 싸인 | 2011년 방송 드라마 |
| 보고싶다 | 2012년 방송 드라마 |

그의 가족극 연기가 특별했던 지점은 과장되지 않은 감정 표현입니다. 아버지라면 늘 강해야 한다는 틀에 갇히지 않고 걱정과 배려, 아쉬움을 평범한 말 속에 담았습니다. 이처럼 일상에 가까운 연기는 시간이 지나 다시 봐도 쉽게 낡지 않습니다.
송재호의 대표작을 찾는 분이라면 영화의 강렬한 모습부터 감상하기보다 《부모님 전상서》의 가족 장면을 먼저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은 배역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족극에서 쌓인 신뢰가 만든 이름에 가깝습니다.


9. 용의 눈물·왕과 비·명성황후 등 사극 이력

송재호의 연기를 가족 드라마에 한정해서 기억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사극입니다. 그는 《용의 눈물》, 《왕과 비》, 《명성황후》, 《장희빈》, 《상도》 등 역사 인물과 권력 관계를 다루는 작품에도 꾸준히 출연했습니다.
《용의 눈물》에서는 민제 역으로 등장했고, 《상도》에서는 임상옥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가족극에서 보여준 친근함과는 다른 장중한 대사 전달을 통해 왕실과 관료, 상인 가문의 분위기를 표현했습니다.

사극에서는 짧은 대사에도 시대적 무게가 실려야 합니다. 현대극의 말투를 그대로 가져오면 인물이 가벼워 보이고, 지나치게 근엄하기만 하면 감정이 전달되지 않기 쉽습니다. 송재호는 목소리의 속도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며 각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검색할 때 ‘송재호 용의 눈물 역할’ 또는 ‘송재호 상도 아버지’처럼 작품명과 배역을 함께 찾으면 긴 출연 목록 속에서 보고 싶은 장면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극을 기억하는 시청자와 가족극을 기억하는 시청자가 서로 다른 송재호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0. 살인의 추억·그때 그사람들·화려한 휴가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재호는 신동철 반장을 맡았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수사 현장에서 상급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따뜻한 아버지 역할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거칠고 직설적인 표정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주인공의 모든 감정을 대신 설명하기보다, 낡은 수사 방식과 조직의 분위기를 인물의 태도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볼 때에는 형사들의 대사뿐 아니라 신 반장이 현장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2005년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극 중 대통령을 연기하며 또 다른 결의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실존 역사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안에서 절제된 표정과 말투로 인물의 권위와 인간적 면모를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가족극, 범죄극, 역사적 소재의 영화가 서로 다른 톤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연기 폭이 드러납니다.
이후 《화려한 휴가》, 《해운대》, 《연평해전》처럼 한국 현대사의 기억과 재난, 가족의 감정을 그린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연평해전》에서는 전사 장병의 아버지를 연기해 국가적 사건을 가족의 상실이라는 시선과 연결했습니다.

세 작품만 비교해도 고인의 연기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렵습니다. 《살인의 추억》의 수사반장, 《그때 그사람들》의 대통령, 《연평해전》의 아버지는 사회적 위치도 말투도 달랐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긴 연기 경력 동안 축적한 경험이었습니다.
11.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마지막 영화 활동

2011년 개봉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송재호의 노년 연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장군봉 역을 맡았습니다. 사랑을 청춘의 감정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과 책임을 함께 바라본 작품입니다.
장군봉은 큰 소리로 사랑을 말하기보다 오래 곁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송재호는 이 역할에서 표정과 작은 몸짓에 감정을 실었습니다. 젊은 시절 작품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배우가 삶의 서로 다른 시기를 직접 통과하며 인물을 표현했다는 사실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말년의 주요 개봉작으로는 2019년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과 《질투의 역사》가 있습니다. 2026년 일부 추모 보도에서는 《자전차왕 엄복동》을 유작으로 지칭합니다. 다만 같은 해 다른 출연작도 개봉했으므로 ‘마지막 촬영 작품’과 ‘마지막 공개 작품’이라는 표현은 구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송재호는 고종 역을 맡았습니다. 80대까지 카메라 앞에 서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배우라는 직업을 얼마나 오래 사랑했는지 보여줍니다. 고인은 생전 노년에 어울리는 묵직한 작품을 더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마지막 작품을 검색하는 독자에게는 한 편의 제목보다 더 중요한 맥락이 있습니다. 노년에도 연기 의욕을 놓지 않았고, 병세가 깊어지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6주기에 되새기게 되는 고인의 직업적 자세입니다.
12. 서울올림픽 사격 심판과 사회공헌 활동

송재호에게는 배우라는 직업 외에 조금 뜻밖의 이력이 있습니다.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을 취득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사격종목 국제심판, 1988년 서울올림픽 사격종목 보조심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방송과 체육 분야에서 모두 오랜 활동 기록을 남긴 셈입니다.
1979년 사격연맹에 선수로 등록한 경력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올림픽에 사격 선수로 출전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서울올림픽 관련 이력의 핵심은 선수 출전이나 메달 수상이 아닌 심판 활동입니다.
촬영 현장에서 집중해 한 장면을 완성하는 일과 사격 경기에 참여해 규정을 적용하는 일은 서로 다른 분야지만 두 활동 모두 오랜 훈련과 책임감을 필요로 합니다. 그는 연기 이외의 관심사도 단순한 취미 수준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환경 보호와 사회공헌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밀렵감시단장과 야생동물 관련 단체 활동,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 어린이 창작동요제 관련 홍보 활동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배우들의 출연료 문제를 비롯해 후배 연기자들의 처지를 살피는 데 목소리를 보탠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이력을 통해 송재호를 작품 속 인물뿐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격, 야생생물 보호, 아동복지 등 관심 분야가 폭넓었다는 사실은 6주기 프로필에서 놓치기 아까운 부분입니다.
13. 백상예술대상·특별공로상·보관문화훈장

송재호는 1982년 제1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국내 대중문화에서 연기력과 경력을 인정받아 온 그는 별세 후에도 공로를 기리는 수상을 이어갔습니다. 다만 생전에 직접 받은 상과 사후에 수여된 공로상은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12월 KBS 연기대상에서는 고인에게 특별공로상이 주어졌습니다. 이어 2021년 10월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됐습니다. 특정 작품 한 편보다 긴 시간 한국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이력 전체를 평가한 공로입니다.
| 시기 | 기록 | 구분 |
|---|---|---|
| 1982년 | 제18회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 생전 수상 |
| 2020년 11월 7일 | 숙환으로 별세 | 향년 83세 |
| 2020년 12월 | KBS 연기대상 특별공로상 | 사후 수여 |
| 2021년 10월 | 제1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 사후 추서 |
| 2026년 11월 7일 | 별세 6주기 | 기일·추모 |

고인의 빈소는 별세 당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2020년 11월 10일 발인이 진행됐습니다.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에덴낙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주기 소식을 보고 “새로 별세한 것인가” 혼동할 수 있지만 사망일은 분명히 2020년 11월 7일입니다.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부모님 전상서》에서 들은 목소리를, 누군가는 《살인의 추억》의 장면을, 또 누군가는 오래된 극장 영화의 청년 배우를 떠올립니다. 서로 다른 추억이 한 배우의 이름 아래 모인다는 것 자체가 그가 남긴 흔적입니다.
14. 송재호 6주기 FAQ TOP 5

송재호 6주기를 검색하면서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다섯 가지 질문을 정리했습니다. 날짜와 숫자는 2026년 11월 7일을 기준으로 구분했습니다.
Q1. 송재호 배우의 6주기는 언제인가요?
2026년 11월 7일입니다. 별세일이 2020년 11월 7일이므로 정확히 여섯 번째 기일을 맞았습니다.
Q2. 송재호 배우의 나이는 몇 살이었나요?
1937년생으로 2020년 별세 당시 향년 83세였습니다. 생년월일은 인물정보에 1937년 3월 10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Q3. 송재호의 학력과 고향은 어디인가요?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해 성장했습니다. 학력은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입니다.

Q4. 송재호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당시 보도에는 오래 앓아온 지병으로 투병한 뒤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전해집니다. 구체적인 질병명은 공개된 신뢰할 만한 보도를 통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단정할 수 없습니다.
Q5. 송재호의 대표작과 유작은 무엇인가요?
대표작은 《영자의 전성시대》, 《부모님 전상서》, 《살인의 추억》,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말년에는 2019년 개봉작 《자전차왕 엄복동》과 《질투의 역사》에 출연했으며,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부 추모 기사에서 유작으로 소개됩니다.
수상 기록을 확인할 때는 2021년 보관문화훈장이 별세 이후 사후 추서된 훈장이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KBS 특별공로상과는 별개의 기록입니다.
15. 결론: 여섯 해가 지나도 기억되는 배우 송재호

배우 송재호의 6주기는 한국의 안방극장과 극장 스크린을 오랜 시간 지켜온 한 사람의 생애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고, 국문학을 공부한 뒤 성우로 출발해 영화와 TV 드라마의 여러 시대를 통과했습니다.
1975년의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청년의 불안과 사랑을,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살인의 추억》에서는 사건 현장의 현실감을,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는 노년의 깊은 감정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국민 아버지’는 그 폭넓은 연기 중에서 많은 시청자의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얼굴입니다.
2020년 11월 7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뒤 KBS 특별공로상과 보관문화훈장 추서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그의 연기 인생을 평가하는 공식적인 흔적이지만, 시청자의 마음에는 세월을 건너 다시 꺼내 보는 영화 장면과 드라마 속 목소리가 더 가까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6년 11월 7일, 여섯 번째 기일을 맞았습니다. 오늘은 그의 대표작 한 편을 다시 찾아보며 한국 대중문화가 기억하는 배우 송재호의 삶을 조용히 되새겨 볼 만한 날입니다. 🕯️